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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 봄으로 가고 있는 요즘입니다.
추운 겨울처럼 움츠린 마음이 지속될 때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 생각납니다.
'인간 실격'은 이 문장으로 소설이 시작됩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소설의 줄거리
'인간실격'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서글픈 주인공 요조의 삶을 세 부분으로 나뉘서 보여줍니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20세기 초 일본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는 요조의 어린 시절을 보여줍니다. 시골의 부유하지만 어두운 대가족 속에서 요조는 이미 소외감과 절망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려는 시도는 거부와 조롱으로 좌절됩니다. 그로 인해 요조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고 '사라진다'는 생각에 매료되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파트에서 요조는 청년이 되어 도쿄에 살게 됩니다. 그는 보헤미안 예술가 및 지식인 그룹에 참여하게 됩니다. 요시코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오해로 점철됩니다. 요조는 알코올 중독과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거듭하며 결국 요시코와 그의 친구들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소설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부분에서 요조는 생존을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다 시즈코라는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요조에게 동질감을 느끼지만 둘의 관계는 끝내 배신과 비극으로 끝납니다. 거듭된 동반 자살 기도에서 여자만 죽고 혼자 살아남은 요조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본가로부터도 절연을 당하고 절망과 자기혐오로 가득한 체 외딴 시골집에서 쓸쓸히 죽음만을 기다리는 “인간 실격자”로 끝이 납니다.
소설의 배경, 태평양전쟁의 패전국, 혼란스러운 젊은 세대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국이 된 이후인 1948년에 출간되어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쟁에서 진 댓가로 미국의 맥아더 장군은 1945년부터 1946년까지 1년간 히로히토 일왕을 대신해서 일본을 다스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일본 역사 최초의 외국인 집정관이었던 셈입니다. 일본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황폐화되었고 일본 국민은 삶과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기였습니다. 심지어 맥아더는 일본을 쉽게 다스리기 위해 국민들이 그동안 '신'으로 여겼던 천황 스스로에게 '나는 인간입니다'라는 말을 하게 한 이야기로도 유명합니다. 이렇게 일본은 미국이 이끄는 연합국에 의해 점령되었고, 일본의 젊은이들은 사회, 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던 충성, 의무, 명예라는 일본의 전통적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맥아더 장군을 존경하는 현상까지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정부와 군대에 대한 환멸과 보다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사회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일본문학의 고전, 다자이 오사무의 유작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 실격' 작품을 통해 변화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주인공 요조의 불만과 소외를 보여줍니다. 우울증과 실존적 절망에 시달렸던 작가 자신의 투쟁에 대한 반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결국 자기 파괴적 소용돌이에 빠지는 주인공 요조의 모습은 사뭇 다자이 오사무의 현실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인간실격'의 출간은 당시 일본 젊은이들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작가가 사망한 이후인 1960년대 미.일 안보조약 연장에 따른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질 때 그들은 전쟁 이후 혼미한 시기를 '다자이 문학'을 성전처럼 받들어 왔음을 고백했습니다. 작가가 고백한 정신 질환과 사회적 고립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묘사한 내용들은 전쟁 이후 비슷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여러 세대의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서른아홉 살의 요절,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 작가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는 일본 문학에 있어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현 가나기에서 쓰시마 슈지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아오모리현에서 가장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키우고 있는 점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가 15살 때 자살했고 어머니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죽음, 절망, 소외를 주제로 한 그의 글쓰기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일본 아오모리현의 히로사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의 메이지 대학에 입학했지만 1년 만에 중퇴했습니다. 도쿄에서 부라이하(無頼派), 즉 "퇴폐의 학교"로 알려진 작가 그룹에 합류하여 문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그룹은 일본의 전통적인 가치를 거부하고 보다 개인주의적이고 쾌락주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수용했습니다.
그의 글은 날카로운 재치, 어두운 유머 감각, 인간 조건에 대한 깊은 이해가 특징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다자이의 글은 더더욱 정치적인 색채가 짙어졌고, 반전 견해로 인해 잠시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는 계속 글을 썼지만 알코올 중독과 부채 등 개인적, 재정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내와 별거하고 젊은 연인과 격렬한 관계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그의 마지막 소설인 "굿바이"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굿바이"는 아사히 신문에 연재 중이었는데 그의 죽음으로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해서 '인간 실격'이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1948년 6월 13일, 다자이와 그의 연인 야마자키 토미에는 다마가와 수로에서 익사했습니다. 두 사람의 자살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안타까운 건 이렇게 위대한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겠지요.
작가는 작품 속 요조를 통해 세상과 소통을 하려는 노력으로 위장된 '익살스러움'을 보여줍니다. 그 지점이 슬프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합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그려낸 인간의 나약함은 기운이 빠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어느 날 요조를 통해 큰 위로를 줍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것만 같아 선뜻 손이 안 갈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요조의 모습을 통해 위로받고 힐링받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어느 날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인간 실격'의 영어 제목은 ' No longer huma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