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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일절은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절부터 국경일로 지정되어,  대한민국의 5대 국경일 중 하나입니다.

     

    3.1절에 세종시 한솔동 아파트에서 젊은 30대 부부가 일장기를 내걸지를 않나, 세종호수공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지역 15개 시민사회단체 주관 '104주년 3·1절 기념행사'를 준비 중에 소녀상에 씌운 털모자 2곳과 망토 3곳 등에 날카로운 흉기로 5~열 군데가 찢겨있는 것을 발견됐다는 뉴스를 보니 마음이 착찹합니다.

     

    독일의 경우 나치 부역자에 대한 단죄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것에 비해, 대한민국은 친일 인사 청산이 깔끔하지 못한 점들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습니다.  조선을 멸망케한 수 많은 친일 인사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이완용'일겁니다.

    이완용 친일 매국노
    이완용

    이완용의 자손들은 바퀴벌레처럼 전 세계로 흩어져 어디선가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겁니다. 

     

    헌데,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 일본으로부터 받은 하사금이 지금 기준으로 30억원이었다면

     

    이 사람은 일제로부터 400억원의 하사금을 받은 자입니다.

     

    바로 특이한 두상을 가져 '대갈대감'이라 불렸던 윤덕영 입니다. 

     

    1. 대갈 대감 윤덕영

     

    1873년 12월 27일 출생~ 1940년 10월 18일 사망

    매국노 윤덕영
    최고의 매국노 윤덕영

     

    1910년 경술국치 당시 일제에 협조하여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이란 작위를 받은 친일파입니다. "나는 단지 하세가와가 시키는 대로 하였을 뿐인데 나보고만 악인이라고 한다" 라며 자신의 친일 행각을 변명하는 망언을 했던 자입니다. 서울 특별시 종로구 옥인동에는 그의 자택인 벽수산장(碧樹山莊)이 있었는데 프랑스식으로 건축한 호화 대저택이었습니다.  윤덕영이 옥인동 절반을 사들여 지은 집으로 집안에 있던 연못의 크기가 200평에 달해 연못에서 뱃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윤덕영 땅과 이완용 땅을 비교해서 보세요

    벽수산장의  천장이 유리어항, 요즘말로 아쿠아리움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양변기가 설치된 집으로 기생들과 밤샘 파티를 여는데 
    명월관에서 온 기생이 좌변기를 처음 보고 옹달샘인 줄 알고 물을 먹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2. 이완용보다 지독한 매국노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 박탈되었을 때 이 늑약을 주도한 이완용도 희대의 매국노이지만,

    경술국치 1910. 8.29일 일주일 전,  대한제국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신하들은 순종에게 옥쇄를 찍으라고 다그칩니다.

    고종은 이미 강제퇴위된 상황입니다. 순종이 머뭇거리는 순간 순종 부인이었던 효황후가 옥쇄를 낚아채 치마폭에 숨겼습니다. 

    그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황후의 치맛속에 손을 넣고 옥쇄를 뺏은 사람이 윤덕영이었습니다.

     

    윤덕영은 효황후의 큰아버지기이기도 했습니다. 조카에게서 뺏은 옥쇄를 가지고 순종 손목을 비틀어 강제로 도장을 찍게 한 매국노 윤덕영!!

    이 댓가로 일본에게서 받은 돈 400억
    서촌 땅의 70%가 윤덕영 소유였다고 합니다.

    윤덕영은 1940년 일제 치하의 대한제국에서 잘 먹고 잘 살다 생을 마감합니다.

    광복이 된 대한제국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하직했으니 새삼스레 될놈될인가 봅니다.

     

    글 발행을 미루고 있는 사이에 세종시 일장기 커플이 알고보니 교회 목사에 실물을 공개하고 나와서는 망언을 이어가고 있더라구요. 유관순이 실존인물이냐는 헛소리부터 시작해서 뭘 먹고 살면 저런 무식한 말들을 뿜어내는걸까 싶네요.

     

    법적인 처분이야 내려질게 없다지만, 부디 역사 공부 제대로 하시고, 오늘을 현명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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