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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은 러시아 문학의 거장,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가 1866년에 출간한 소설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페트라셰프스키 모임’에서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명으로 28세에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극적으로 사형집행은 취소되었으나, 4년간의 감옥생활 이후 4년 동안을 시베리아에서 복무했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시간들이었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이런 시절을 보낸 후 자유를 되찾았을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야말로 극우 보수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기작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신과 구원의 문제가 이후 작품들에서 주요 화두로 등장합니다. 8년여간의 유형생활 이후 '지하로부터의 수기' 이후 두 번째로 집필한 작품이 바로 '죄와 벌'입니다.

죄를 지었지만 잘못은 아닙니다
소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로디온 라스콜리코프와 함께 시작됩니다. 돈이 없어 학교를 그만둔 라스콜리코프는 어머니와 여동생 두냐와 함께 관처럼 작은 방이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러 갔다가 전당포 노파가 그를 속이자 이성을 잃고 맙니다. 라스콜리코프는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특별한 사람"들은 법 위에 있다 자신의 이론을 시험해 보겠다고 생각합니다. 라스콜리코프는 몇 주 동안 살인을 계획하고 마침내 실행에 옮기지만, 실수로 전당포 노파의 여동생도 죽이고 맙니다. 살인 후 라스콜리코프는 심각한 정신적 쇠약에 시달립니다. 예심판사 포르피리 페트로비치는 살인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곧 라스콜리코프를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라스콜리코프의 심리를 꿰뚫어 보며 그를 압박해 갑니다. 라스콜리코프는 소냐에게 살인을 자백하게 됩니다. 그녀는 그에게 경찰에 자수하고 구원을 받으라고 조언합니다. 소설은 라스콜리코프가 살인을 자백하고 시베리아에서 8년간의 노역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끝납니다. 소냐는 그를 따라가고 두 사람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살인 후 라스콜리코프의 죄책감과 편집증은 그가 자신의 동기를 완전히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직관력이 뛰어난 포르피리는 라스콜리코프를 살인범으로 의심합니다. 그는 라스콜리코프와 대립하는 대신, 외려 심리적인 전술을 사용하여 자백을 유도합니다.
소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새어머니에게 매춘을 강요당하는 가여운 처지지만, 라스콜리코프에게 위로와 지지의 원천이 됩니다. 소냐는 그 누구보다 순결하고, 동정심이 많은 인물로, 그녀의 친절과 연민은 차갑고 계산적인 라스콜리코프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소냐는 소설에서 희망과 구원의 상징이며, 라스콜리코프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궁극적으로 그가 자수하고 용서를 구하도록 이끌어냅니다.

왜 전당포 노파를 죽였을까?
라스콜리코프는 부유한 전당포 노파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부자인 노파를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그런 목적을 위한 정당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스스로를 나폴레옹과 같은 "초인", "비범한 사람" 즉, "extraordinary man" 라고 표현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범행을 저지르면 자신이 더 높은 수준의 의식으로 올라갈 수 있고 자신이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들처럼 우월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대의를 위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거나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당포에서 훔친 돈으로 고작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의 교육비를 충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후 라스콜리코프는 기대했던 우월감을 얻지 못하고 심한 정신적, 정서적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 여파로 인해 라스콜리코프는 결국 자신의 신념에 의문을 품고 죄를 자백하고 처벌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행동에 대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공감과 연민을 갖게 되고, 인간 삶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법 위에 존재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착각
주인공은 스스로를 "특별한 개인" 이라고 생각하고, 그와 같은 특별한 일부 사람들은 법 위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를 권리가 있다는 이론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더 높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법을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의 이익을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스스로를 이 이론을 실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면서 노파를 죽인 스스로를 정당화시킵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자신의 이론에 결함을 깨닫고,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알게됩니다.
법률기술자 아버지, 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를 아버지로 둔 한 오만한 젊은이 정윤성의 학폭 뉴스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검사는 돈을 받는 직업이고, 판사를 알아두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얘기를 고등학생이 내뱉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진중권 교수 말처럼 집에서 대체 어떤 말들을 애 앞에서 했길래 말입니다. 동급생에게 제주도에서 온 돼지 xx라는 욕을 서슴지 않게 내뱉고, 폭력을 이동시키며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고서도 본인은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생이 되었다는 현실이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서울대 철학과 재학 중이라는 그 학생도 스스로를 "비범한 사람", "extraordinary man"이라고 법 위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 인생의 결론이 '시베리아 징역형'은 아니어야 할텐데요.
